새로운 지위의 상징? 인문학 교육
인문학 학위가 가장 부유하고 엘리트적인 캠퍼스를 제외한 곳에서는 사라지는 미래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더 이상 가정이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올여름, 미국을 대표하는 공립대학 중 하나인 인디애나대학교 블루밍턴 캠퍼스는 100개 이상의 학술 프로그램을 폐지하거나 통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희생양에는 미술사, 비교문학, 종교학, 불어 등이 포함됩니다. 이는 매년 평균 10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하도록 요구하는 인디애나주의 새로운 법률에 따른 결정으로, 미국 고등교육의 전환점을 의미합니다. 한때 대학 교육의 핵심을 이루던 학문 분야가 이제는 불필요하다고 여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문학의 대규모 후퇴
인디애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전역에서 공립대학과 사립대학이 막대한 재정적·정치적 압박 속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최근 전공 축소에 나선 학교들 가운데 상당수는 인디애나대학이나 서버지니아대학교처럼 규모가 큰 공립대학이거나, 뉴욕의 와그너 칼리지나 위스콘신의 세인트노버트 칼리지 같은 소규모 사립대학입니다. 이들 학교는 역사학이나 예술 교육 프로그램처럼 인기가 적은 전공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있습니다.
대학들은 대체로 외부 컨설턴트의 권고를 받아 이러한 개편을 시행하며, 등록 감소와 노동시장 수요 맞춤을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최근 통과된 One Big Beautiful Bill Act (P.L. 119-21)는 이러한 우려를 더욱 가속화했습니다. 이 법은 대학원생의 연방 보조금 자격을 졸업 후 평균 소득과 연동시켰고, 소득이 학사 학위 보유자의 전국 중위소득 이상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또한 대학원 대출에도 상한선을 두었고, 주 차원의 규제는 전공 존속을 위해 최소 졸업생 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인문학과 예술 프로그램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지난해 보스턴대학은 12개의 인문·사회과학 박사 과정 신입생 모집을 중단한다고 발표했고, 시카고대학교도 최근 여러 인문학 및 예술 박사 과정의 입학을 축소 또는 중단했습니다.
투자수익(ROI) 문화와 위기에 처한 자유학문
경제가 ‘측정 가능한 결과물’을 중시하는 가운데 인문학은 오래전부터 불안정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제 ROI(투자 대비 성과)가 고등교육 의사결정의 핵심 기준이 되면서 인문학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5년간 등록 데이터에 따르면 STEM 과목은 인문·과학 과목을 훨씬 빠르게 추월했습니다.
하지만 최상위 부유층 사이에서는 반대 흐름도 나타납니다. NPR의 Planet Money는 음악가와 예술가들이 의사나 치과의사, 외과의사보다 부유한 가정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사립고 출신 학생들이 대학 어학 전공생에서 불균형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보도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영어·불어 전공이 ‘특권의 낙인’으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인문학 전공 학생 수가 줄어들수록 상위 1% 출신의 비율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초고액 자산가들의 인문학 투자도 늘고 있습니다. 올해 초, Airgas의 CEO 피터 맥코슬랜드와 그의 아내는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 인문대학에 7,50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그는 “나는 대학에서 단 한 과목의 경영학 수업도 듣지 않았지만, 역사 전공을 통해 얻은 비판적 사고 덕분에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외에도 휴렛재단은 스탠퍼드대학에, KKR 공동 CEO 조지프 배는 하버드 인문대학에 아시아계 미국학 장학금과 정부학·역사학 교수직, 창작 글쓰기 강연 기금을 지원했습니다.
새로운 문화 자본
역사적으로 부유층은 문화와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예술을 후원했습니다.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계승했을 때, 그는 셰익스피어 극단을 직접 후원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록펠러와 카네기가 박물관과 콘서트홀을 지원해 고급문화의 후원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부유층의 문학·언어학 열정은 또 다른 트렌드와 닮아 있습니다. 바로 ‘무(無)스크린 육아’입니다. 실리콘밸리의 부모들은 자녀를 디지털 기기 없는 발도르프나 몬테소리식 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레딧 공동 창업자 알렉시스 오하니안은 딸의 스크린 타임을 엄격히 제한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아이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길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알고리즘 경제를 만든 부모들이 자녀를 그로부터 차단하며, 독서와 사유가 새로운 사치품이 되고 있습니다.
즉, 한때 보편적이었던 것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배타적 자산’이 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학들의 대응
여러 대학이 인문학을 축소하는 와중에도, 엘리트 대학들은 오히려 기부와 기금을 통해 인문학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대학은 올해 스티븐 A. 슈워츠먼 인문학 센터를 완공할 예정으로, 영문학·역사·현대 언어학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윤리학까지 포함할 계획입니다. 프린스턴대학은 2024년 인문학 이니셔티브를 출범해 문학, 역사, 철학을 글로벌 문제와 연결하는 융합 연구를 확대했습니다. 2024년 10월, 유니클로 창업자 야나이 타다시는 UCLA 인문대학에 3,100만 달러를 기부해 일본 인문학 글로벌화 프로젝트를 확대했습니다.
지적 유창성의 계급 격차
미국 드라마 30 Rock의 한 장면에서 알렉 볼드윈은 “첫 세대는 손이 닳도록 일하고, 둘째 세대는 대학에 가서 혁신을 하며, 셋째 세대는… 즉흥극을 배운다”고 농담합니다. 이는 연극 수업의 가벼움을 풍자하지만 동시에 누가 인문학을 감당할 수 있는가의 현실을 드러냅니다. 경제적 이유로 중산층과 노동계층은 직업훈련을 선택하는 반면, 부유층은 한때 ‘교양인’의 필수였던 폭넓은 지적 훈련을 여전히 보존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이는 단순한 기술 격차가 아니라 세계관 격차를 낳게 됩니다.
고대 로마에서 그리스어를 구사하고 호메로스를 인용할 줄 아는 것은 교양뿐 아니라 계급의 상징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등가물은 카라바조 작품을 분석하고 제인 오스틴을 인용하며, 코딩·역사·윤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10대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본래 인문학은 배타적이지 않았습니다. 토머스 제퍼슨은 인문학을 “전제정치에 맞서는 최고의 방어 수단”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인디애나대학처럼 인문학 전공 자체가 사라진다면, 피카소를 알아보거나 계몽주의의 원리를 아는 것이 별장 소유와 같은 ‘계급의 징표’가 될지도 모릅니다.
결론
문제는 인문학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의 여부가 아닙니다. 누구를 위해 살아남을 것인가입니다.
참고 기사 출처 : https://www.forbes.com/sites/lizdoestone/2025/09/02/the-new-status-symbol-a-humanities-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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